*1907.1.14.: 성령의 불이 떨어진날 B *길선주 목사 1.1907-2021 평양대부흥운동 114주년 2.1875:미국 ‘시카고’ 부흥운동:무디 3.1904:영국 ‘웨일즈’ 부흥운동:이반 로버츠 4.1905:인도 ‘카시아’ 부흥운동:판디타 라마바이 5.1906:미국 ‘아주사’ 부흥운동:윌리엄 시모어 6.1907:한국 ‘동방의 예루살렘’ 평양 대부흥운동:길선주

by Admin posted Apr 1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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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hua* Ha' Mashiach !

*Yeshua* Messiah !

*Yeshua is the name of Jesus in Hebrew
*Yeshua means Salvation
*Yeshua means seeing

the nail prints in the hands of The Almighty

 

*예슈아*는 “구원 이라는 뜻의 히브리어 예수님의 본명으로서 전능자의 에서 자국을 보다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다니엘의70이레는 구약의 요한계시록 이면서 인류역사의 척도이며 잣대인 신약의 종말 계시록

입니다

 

*다니엘의 70이레로 해석 되지않은 계시록은 전부 몽땅 ‘엉터리 계시록’ ‘망통 계시록’ 이다

오늘은 절기강해 설교 대망의 500번째를 넘어 5백 아흔번째 (590) 시간으로서 주후 2017년 923일 신년절 Rosh Hashanah 나팔절 예수님 대관식  여든 세번번째 2021년 신년절 Rosh Hashanah 나팔절  유대력 5782 2021년 신축년410  예수님께서 안식하신 土요일  예배 30분 강해 설교 입니다

 

*1907.1.14

    1.성령의 불이 떨어젔던 날이요

   2.도적놈 아간 길선주가 통회자복 했던 날 입니다

    

    *도적놈 길선주의 통회자복*

  

    나는 아간 같은 도적놈 입니다 친구가 죽어가며 아내에게

     재산을 정리 해달라고 맡긴돈을 가로 챘습니다

     나는 용서받지 못할 도적놈 중에 도적놈 입니다 교회

     바닥을 치면서 딩굴면서 방성대곡 하니 장대현 교회

     남자성도 2000명중 철야예배 참석자600명 전체가

     울부짖으며 방방 뛰면서 대통회 자복은 지구촌 역사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수 없는 장관이었다고 합니다

      마치 지옥이 뒤집혀 진것처럼 대 소동의 연속이 3년정도

      조선 전국을 휩쓸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각나라에서

      파견된 션교사들의 선교보고에서 나온 사실들 입니다

    

       [$100 현재환률로 $10,000  천만원]

       이상 중략 

      

     *토마스 션교사를 참수한 박춘권*

    

     1907 4 1일부터 시작된 평양 연합사경회도  

     마찬가지였다40년 전 제네럴셔먼호 사건 때(1866)

     토마스 선교사의 목을 쳤던 박춘권이 그 사실을 자복한

     것도 이 무렵이다덕분에 미궁에 빠졌던 사건들도 많이

     해결됐다.

 

      *1907. Again 2021.

       1.평양대 부흥운동  114주년 되는해 입니다

       2.성령께서 다시 한번 오시리라 예견 됩니다

       

       *옛것을 다시 찾으시는 하나님*

                 전도서3:15

       

       15:이제 있는 것이 옛적에 있었고장래에 있을 것도

           옛적에 있었나니하나님은 이미 지난 것을 다시

           찾으시느니라."

 

 

2021-4-10 설교제목

You Tube 설교제목

 

*1907.1.14.: 성령의 불이 떨어진날 A *아간 길선주  

 

1.1907-2021 평양대부흥운동 114주년  

 

2.1875:미국 ‘시카고’ 부흥운동:무디  

 

3.1904:영국 ‘웨일즈’ 부흥운동:이반 로버츠 

 

4.1905:인도 ‘카시아’ 부흥운동:판디타 라마바이

 

5.1906:미국 ‘아주사’ 부흥운동:윌리엄 시모어  

 

6.1907:한국 ‘동방의 예루살렘’ 평양 대부흥운동:길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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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4-10 설교제목

카톡 설교제목

 

*1907.1.14.: 성령의 불이 떨어진날 A *아간 길선주  

 

1.1907-2021 평양대부흥운동 114주년  

 

2.1875:미국 ‘시카고’ 부흥운동:무디  

 

3.1904:영국 ‘웨일즈’ 부흥운동:이반 로버츠 

 

4.1905:인도 ‘카시아’ 부흥운동:판디타 라마바이

 

5.1906:미국 ‘아주사’ 부흥운동:윌리엄 시모어  

 

6.1907:한국 ‘동방의 예루살렘’ 평양 대부흥운동:길선주

 

 

 

*Yeshua-Jesus' Emergency Notice*

*예수님의 긴급 공지사항*

 

*김정은 존엄영부인 리설주 여사께*

*문재인 대통령,영부인 김정숙 여사께*

 

*평양 만수대 주인은 성령님 하나님 이십니다

*서울 청와대 주인은 예수님 하나님 이십니다

 

*평양 만수대 상공에는 성령님의 축복이 높이떠

  대기중에 있습니다

 

*서울 청와대 상공에는 예수님의 축복이 높이떠   대기중에 있습니다

 

*김정은 존엄께서는 2021년이 가기전에 존엄의 자리에서 내려오셔서  성령님 자리를 양보해  주시기 바랍니다

 

*문재인 대통령께서도  2021년이 가기전에 대통령의 자리에서 내려오셔서  예수님 자리를 양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우리 함께 기도 올리시겠습니다

*오늘도  부족한  말씀 들고 단위에

섰사오니 말씀위에 기름 부어 주시옵시고 대언의

영을 나리워 주시 옵소서

*80 인류들의 영원이신 주님!

*오늘 성령님과 함께 호위천사 가브리엘 미가엘을  대동하시고

* 그룹천사의 바람날개 / 하나님의 전용열차 /

황금마차를 타시고 뉴욕도성에 있는 예슈아 선교

교회에 오셔서 좌정 하옵소서

 

*머리숙여 인사*

 

*감사 하옵고 예슈아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

 

지극히 높은  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 하심을 입은 ‘천손민족- 민족 평화로다

 

*할렐루야 - Hallelujah

*예슈아 하맛시야 - Yeshua Ha’ Mashiach!

*예슈아 멧사야 - Yeshua Messiah!

 

*영광과 존귀를 영원무궁 세세토록 받으시옵소서

*감사 하옵고 예슈아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태양력 2021 유대력 5782

Yeshua  어서 속히 오시옵소서

Welcome! My Lord Yeshua !

 

Ascension Song of The Rapture

환희의 승천의 노래

Ascension Song of Yeshua

Yeshua 환희(歡喜) 승천(昇天)

노래를 부를지어다

 

*천군들아 천사들아   베드로 총장 목사님과 함께  ‘환희의 승천의 노래 부를 지어다

 아멘!

 

환희의 승천의 노래

                                작사:성령

                                작곡:예슈아

                               기록:현베드로 총장목사

 

지극히 높은  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 하심을 입은 ‘천손민족- 민족 평화로다

 

*할렐루야 - Hallelujah

*예슈아 하맛시야 - Yeshua Ha’ Mashiach!

*예슈아 멧사야 - Yeshua Messiah!

 

*영광과 존귀를 영원무궁 세세토록 받으시옵소서

*감사 하옵고 예슈아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2021-4-10 설교제목

You Tube 설교제목

 

*1907.1.14.: 성령의 불이 떨어진날 A *아간 길선주  

 

1.1907-2021 평양대부흥운동 114주년  

 

2.1875:미국 ‘시카고’ 부흥운동:무디  

 

3.1904:영국 ‘웨일즈’ 부흥운동:이반 로버츠 

 

4.1905:인도 ‘카시아’ 부흥운동:판디타 라마바이

 

5.1906:미국 ‘아주사’ 부흥운동:윌리엄 시모어  

 

6.1907:한국 ‘동방의 예루살렘’ 평양 대부흥운동:길선주

 

 

 

*성령의  자취*

 

*1875미국 ‘시카고’ 부흥운동(1875-1900)

*1904 영국 ‘웨일즈’ 부흥운동(1903-1904)

*1905 인도 ‘카시아’ 부흥운동(1905-1906)

*1906 미국 ‘아주사’ 부흥운동(1906-1934)

*1907 한국  ‘평양 대 부흥운동(1907-1910)

 

 

*1875미국 ‘시카고’ 부흥운동(1875-1900)

 

*시카고 무디 부흥 운동*

전성기

1875-1900

*무디는 안수를 받지 안은 평신도였다.*

 

*교육은 초등학교 5학년 수준으로 문법에도 맞지 않는 언어를 구사하는 참으로 변변치 못한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주변 사람들의 눈에 확연히 드러날 정도의 방언이나 예언기적의 은사를 지닌 사람도 아니었다.

 

*더욱이 무디를 포함하여 어린 아들 일곱에 쌍둥이 자매까지 유복자로 낳게 되어과부 혼자서 아홉 자녀를 기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녀는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68:5) 말씀을 굳게 믿고 애송하였다.

 

*네가 어디에 가든지 하나님이 너를 따라 다니실 꺼야"라고 하신 어머니의 말씀이 그를  괴롭혔다

 

*그의 주일학교 선생 킴블(Edward Kimble) 그를 찾아왔다.

킴블 선생은 포기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받아드릴 것을 촉구하였다결국 무디는 양화점 뒷방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했다(1;12).

 

무디는 거리와 골목역전 대합실하숙집 근처 등을 돌아다니며 아이들을 모아들였다.

노스필드의 소년 무디가 시카고에   불과 6, 80 학급에 학생  1,500교사 100명이 넘는 어린이 전도자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1871  무디가 시카고에서 부흥집회를 인도할 청중석의  앞줄에 앉아 있던 쿡과 하커스트 부인(Sarah Cooke & Hawkhurst) 자주 무디의 주위를 끌었다.

 

*예배가 끝나자 무디에게 "저희들은 오랫동안 당신을 위하여 기도해 왔습니다", "어째서 거듭난 성도인 나를 위해 기도한단 말입니까?", "왜냐하면 당신은 권능 필요하기 때문입니다(You need power).

 

  무디의 머리 속에는 '하나님의 권능'이라는 말이 사라지지 않고 맴돌았다.

 

그래서 그는 '성령의 기름부음'(the anointing of the Holy Ghost) 달라고 눈물을 흘리며 끊임없이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성령의 권능에 붙들린 사람*

 

그가 뉴욕시의 월가(Wall Street) 거닐던 어느  하나님의 권능이 강하게 임하였다.

하나님의 임재가 너무나도 강렬하여 무디는 하나님의 손을 거두어 달라고 간청해야만 했다.

 

그렇다고 어떤 새로운 진리를 제시하거나 다른 부흥운동에서 처럼 입신·진동·신비적인 역사가 나타난 것도 아니었다.

 

 

무디는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숫자인  1  이상에게 복음을 전하였고수백만 명을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였다.

 

 

무디 부흥 운동만큼 20세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신앙운동도 드물 것이다. 1875년부터 4반세기 동안 미국과 영국을 영적으로 뒤흔들어 놓았던 무디 부흥 운동의 중심무대는 미국 시카고다.

정상적인 교육을 포기한 무디는 1854 17  보스턴에 있는 자신의 삼촌 홀톤스의 구두가게에 취직했다여기서 일하던 1855 421그에게 일생 일대의 전환점이 찾아왔다.

 

 이날 그가 다니던 교회의 교회학교 교사 에드워드 킴볼이 구두가게를 찾아와 일에 지친 그에게 따듯한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전한 것이다주님을 자신의 구주로 영접한 이후 무디의 생은 완전히 달라졌다.

    “
내가 회심한 그날 오전 밖으로 나갔을 

 

나는 태양과 새들,그리고 모든 것과 깊은 사랑에 빠졌다.”


 

무디는 1  시카고로 이주하여 사업을 시작했다그는 사업에 성공해  1000파운드의 수입을 올릴  있었지만영혼을 주님께 인도하는 일에 온전히 헌신하기로 다짐했다거리에 방황하는 수백 명의 도시 젊은이들이 무디의 설교를 통해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했다.

 

 현숙한 아내 유그노 에마 레벨은 그의 사역에 동력을 제공했고아름다운 음성을 지닌 젊은 공무원 생키와의 만남은 무디의 사역을 완전히 바꾸었다.

무디가 시카고 빈민가에 설립한 교회는 생키가 합류하면서 영적 품격을 달리 했다영혼을 살리는 생키의 찬양이 동반된 무디의 부흥집회는 무디를 일약 대표적인 부흥 운동의 지도자로 만들었다생키의 찬양을 통해 마음의 문을 활짝  회중은

 

3R,  

 

1.죄로 인한 타락(Ruin by Sin),

 

2.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구속(Redemption by Christ),

 

3.성령에 의한 중생(Regeneration by the Holy Spirit)

 

으로 대변되는 무디의 선명한 메시지를 듣고,

회개와 구원의 은총으로 눈물을 흘리며 자리를 떠날  몰랐다.
 

복음의 열정에 불타던 무디는  차례 영국에 전도 여행을 떠났다조직도자금도 준비되지 않은  영국 리버풀에 도착한 무디와 생키는 은혜로운 찬양과 서민적이면서도 강력한 복음 메시지를 통해 리버풀 요크 뉴캐슬 런던에 이어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까지 완전히 뒤집어놓았다.
 

무디의 집회마다 성령의 기름 부음이 임했고 그의 설교는 청중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영국인의 고백처럼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알겠다는 매우 뜨거운 열정을 느끼지 않고는 결코 무디의 설교를 들을  없었다

 

무디와 생키로 인해 버밍엄에서도 부흥의 불길이  도시에 있는 거의 모든 회중에게 옮아붙는 듯했다평이하면서도 결단을 촉구하는 무디의 메시지는 수많은 영혼을 깊은 잠에서 깨웠다.
 

 

무엇보다 수많은 젊은이가 무디의 선명한 메시지를 듣고 해외선교에 헌신하기로 결심했다. 1882 11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열린 무디의 집회는 학생들을 완전히 사로잡았다수많은 학생이 눈물을 흘리며 세계 선교에 자신의 생명을 바치기로 결심했다. 7명의 케임브리지 대학 졸업생이 화려한 장래를 뒤로 하고 중국 선교를 자원한 것도 이때였다 현장을 방문했을  열정을 토하는 무디의 설교와 기도의 함성이 120년의 시공을 뛰어넘어  귓전에 생생하게 들리는 듯했다.
 

무디 부흥의 영향은 참으로 놀라웠다무디는 무디성경학교와 마운트 헐몬 학교를 통해 수많은 그리스도의 일꾼을 양성하고 모트와 로버트 윌더를 비롯한 수많은 미국 젊은이들의 가슴에 해외 선교의 불을 지폈다학생자원운동(Student Volunteer Movement) 역시 무디 부흥의 산물이었다수많은 젊은이가 무디의 설교를 듣고 해외 선교를 자원했다

 

20세기에 접어들자 미국은 영국을 앞지르고 해외 선교 운동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1900 4000명에 불과했던 미국 선교사 수는, 4반세기가 지난 1925년에는 14000명으로 급증영국을 훨씬 앞질렀다.

 
무디의 부흥은 세계 근대 선교를 앞당겼다무디의 영향을 받은 수많은 젊은이들이 복음에 불타 5대양 6대주로 달려갔다그중에 아시아는 선망의 선교지였고조선은 가장 선호하는 나라였다돌이켜볼  무디 부흥의 가장  수혜자는 조선이었다.
 

제임스 게일을 비롯해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무디 부흥 운동의 영향을 받고 은둔의 나라 조선으로 달려왔던가!

 

1888 게일이 한국을 향해 북미를 떠나기 바로 전날 51세의 무디는 게일의 어깨를 두드리며 미지의 나라로 향하는  젊은이를 이렇게 격려했다. “자네 조선으로 간다지 자네를 위해 기도할 걸세,”

1907
 평양 대부흥 운동의 주역 마포삼열윌리엄 블레어그레이엄 스왈른찰스 번하이젤윌리엄 헌트 역시 무디 부흥을 경험하고 복음의 열정에 불타 조선으로 달려왔다이들은  땅에도 거룩한 부흥이 임하기를 사모하며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부흥을 꿈꾸는 무리가 구름처럼 생겨났고마침내 평양과 한반도 전역의 교회가 놀라운 부흥을 경험했다.

비록 무디는 한번도  땅을 밟은 적이 없지만그의 흔적은 1세기가 훨씬 지난 지금에도 한반도 구석구석에 깊게 배어 있다하나님은 비천 자를 들어 위대한 역사를 이루신 것이다.

 

지금  땅의 교회는 2 무디를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다 주님,그같은 인물을 어서 속히 보내주소서!

 

*1904 영국 ‘웨일즈’ 부흥운동

*모리아 교회*

 

영적 부흥기가 있는가 하면 영적 침체기가 있다우리는 그것을 성경을 통해 발견한다하나님이 택한 민족인 이스라엘도 영적 부흥기와 침체기를 겪었으며 개인적으로는 선지자 엘리야에게서 그것을 발견한다.

영적 침체에 빠져 있던 18세기 영국은 웨슬리 같은 위대한 인물로 말미암아 새로운 부흥기를 맞게 됐으나 세월이 흐르자  다시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20세기초 영국을 부흥시킨 강력한 성령운동이 웨일스 지방에서 일어났으니 그것이 바로 1904년의 웨일스 부흥운동이다 부흥운동은 당시 유명한 영적 지도자에 의해 일어난 사건이 아니다 대도시의 규모가  교회에서 시작된 운동도 아니다.

*1904
 웨일스 부흥운동은 광부의 아들로 태어난

이반 로버츠’(18781951)라는 무명의 청년에 의해 시작됐다 진원지 역시 웨일스의 한적한 시골() 있던

모리아 교회라는 작은 교회였다웨일스 부흥운동은 영국 전역은 물론 유럽과 아시아 지역으로 확산된 강력한 성령운동이었다.

*장대현교회를 중심으로 1907년에 일어난  땅의 부흥운동 역시 바로 웨일스 부흥운동에 자극 받았다는 점에서 한국 교회 초기 사역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웨일스 부흥운동의 주역 ‘이반 로버츠 웨일스 지방 글레모건에서 광부의 아들로 출생했다생활이 넉넉하지 못한 가정에서 14형제  아홉째로 태어나 교구학교에서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그는 12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광산에서 힘든 일을 했으며 한때는 대장장이 일을 배우기도 했다.

그러던  1904 칼뱅파 감리교회 목회 후보자로 선발되어 뉴캐슬 에믈린에 있는 대학예비학교에 들어가게 된다그의 나이 26 때였다그러나 이반은 빈한한 생활 속에서도 철저히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으로 ‘삶의 모든 면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싶다 강한 영적 욕망을 가지고 자라났다.

그는 웨일스의 부흥운동이 일어나기 11년전부터 남달리 기도에 전념하고 밤을 지새우며 성경을 연구하는  성령의 도우심을 구했다고 한다이런 점으로  

그는 하나님께서  시대를 위하여 준비한 인물임을   있다로버츠는 기도와 말씀으로 준비한  기간에 자주 시대적인 환상을 보고 성령의 임재를 체험했다고 한다마침내 1904년에 이르러 웨일스 도처에서 부흥운동이 일어날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당시 이러한 영적 분위기는 하루아침에 조성된 것이 아니라 로버츠를 비롯한 일단의 기도용사들이 영적 침체에서 벗어나기를 오랫동안 기도해왔기 때문이었다.

로버츠는 즉각 고향으로 돌아가 모리아 교회를 중심으로 기도집회를 시작했다그해 10 30 그는 기도중에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되자  다음날 지체 없이 고향 교회로 돌아간 것이다그날은 공교롭게도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기념일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성령에 사로잡힌 로버츠는 모리아 교회 담임목사 다니엘 존스에게 자신이 체험한 비전을 얘기하고 설교할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다그러나 무명의 전도자를 좀처럼 교회는 쉽게 받아 주지 않았다가까스로 설교의 기회를 얻은 로버츠는 “성령님께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나가도 좋습니다라고 담대히 도전했다 결과 그의  집회는 남아있던 17명으로 시작됐다고 한다.

그러나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 같은 성령의 강력한 역사로 17 모두 회개하고 성령충만함을 받게 된다.그중에는 로버츠의 동생과  자매도 포함돼 있었다부흥의 불길이 웨일스의 모리아 교회에 떨어졌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져나갔으며  집회 이후 30일만에 37000명이 주께 나아가 회개하고 놀랍게도 5개월만에 웨일스 전역에서 10만여명이 교회를 찾게 됐다.

이러한 놀라운 사건으로 사람들은 이반 로버츠를 ‘웨일즈의  웨슬리라고 불렀다보잘것 없던  소년광부를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크게 들어 쓰신 것이다특히 그의 성령집회에는 탄광에서 일하는 광부들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대거 참석했는데 그들은 눈물로 회개하며 훔쳐온 연장을 돌려주거나 함부로 다룬 당나귀를 껴안고 사과하는 일까지 있었다고 한다웨일스의 부흥운동은  지방의 사회정화운동을 가져와 술집과 당구장이 텅텅 비고 형무소 죄수들에게까지 전도운동이 일어났다고 한다.

무엇보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이처럼 뜨겁고도 강력한 웨일스 부흥운동은 영국 전역과 미국 캐나다 인도 중국  아니라 한국에까지 영향을 미쳤으니

그것이 바로 ‘1907년의 대부흥운동이라는 사실이다당시 미국의 저명한 목사 존스턴 박사가 직접 웨일스를 방문하여 로버츠의 부흥회를 목격했을  아니라 이반 로버츠 목사에게 부흥의 비결을 자세히 물어보았다.

그후 그는 중국에 가서 여러 곳에서 웨일스의 부흥운동을 증거하다가 1906 9 서울에 오게 된다 무렵 마침 장로회연합회가 개최되었는데 존스톤은 그곳에서 웨일스 부흥운동을 간증하였다그때 그곳에 모인 선교사들과 목사들이  감동과 도전을 받고 한국 교회의 부흥운동을 갈망하게 되었다특히 당시 한국 교회의 중심 인물이었던 길선주(당시 장로목사도  은혜를 받게 되는데 이것이 1907 장대현교회를 중심으로 일어난 회개와 영적 대각성운동의 시발점이다참으로 시공을 초월한 성령의 놀라운 역사가 아닐  없다.

20
21년은 한국교회 성령 114주년이 되는  깊은 해이다. 1907 대부흥운동을 기점으로 하는 성령 114주년이다. 1907년의 장대현사건은 1904 웨일즈 사건이 가져온 성령의 연쇄폭발이다성령

114주년을 맞이하는 한국 교회는 다시 한번  시대에 2 웨일스 모리아교회 부흥운동과 2 장대현교회 부흥운동을 일으켜야 한다지금 우리 사회는 극심한 영적 침체와 현실적 분열을 겪고 있다국민은 좌절과 실의에 빠져 있다이러한 때에  민족이  길을 한국 교회가 열어야 하며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2 대각성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필자가 웨일즈 부흥운동의 진원지인 모리아 교회를 찾았을 때는 교회 출입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수소문 끝에 교회를 관리하는 다이프리그 그리피즈 장로를 만나 교회를 돌아보게 됐다정원에는 이반 로버츠 목사의 흉상이 새겨진 기념비가 세워져 있고 뒤뜰에는 세상을 떠난 성도들의 무덤이 보존돼 있었다 중에는 이반 로버츠와 함께 부흥운동을 일으켰던 그의 동생과 누이들,그리고 부모까지 한자리에 영면하며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었다.

 

 

*1905 인도 ‘카시아’ 부흥운동*

*여성 해방을 이끈 선구적 인도 기독교 지도자*

*판디타 라마바이(Pandita Ramabai,(1858~1922)*

'석학의 여신'
 

*사도 도마에서 이름이 유래한 '마르토마'(Mar Thoma) 기독교인은 인도 남서부를 중심으로 오늘날에도 상당한 세력을 과시한다.

*
판디타 라마바이(Pandita Ramabai,) (1858~1922)  '처음' 해당하는 유산을 만든 인물이다브라만 계급에 속한 데다 최고의 ‘산스크리트’ 문헌 해석자로 명성을 날리던 여성이 19세기 후반에 기독교로 개종한 드문 사례를 만들었다

 

*개종한 후에는 거의 최초의 인도 여성해방 운동가로 활약하면서 세계 여성운동 지도자들의 모델이 되었다묵티선교회를 만들어 인도 여성  고아들의 대모가 되었는데 선교회를 중심으로 성장한 공동체의 최고 지도자는 인도인 라마바이였고서양 선교사가 그를 보조했다현지 기독교인이 상관이고 서양인 선교사가 보조인 이런 선교 현장은 20세기 중반 이전에는 세상 어느 곳에도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라마바이는 20세기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부흥의 원류  하나로평양 대부흥에도 영향을 끼친 1905 묵티 부흥의  주역이었다

*마라티어 성경 번역*

 

*주로 신앙 구도자이자 사회 개혁자로  많이 활동하며 이름을 떨친 라마바이가 언어적·학문적 천재성을 발휘한 영역은 성경 번역이었다인생 마지막 20년이 시작되는 1900 무렵부터 라마바이는 지역 언어인 마라티어(Marathi)  성경전서를 번역하기 위한 준비 작업에 거의 전적으로 시간을 투자했다

*라마바이는지역 평신도 선교사들이 다른 언어를 알지 못하 는 현지 주민에게 복음을 전하는  도움을 주기 위해 시작한 

 성경 번역을 완료한  8개월이 지난 1922 4 2일에 사망했다결국  성경은 라마바이가 자기 민족에게 남겨  가장  신앙 유산이었다라마바이는 그리스어와 히브리어 어원에 기초해서 마라티어 용어 사전을 편집하기도 했다.

 

 

성경번역:

 

1.일본의 이수정

 *영어성경 조선어 번역

 *언더우드에게 한글을 가르쳤다

 *조선귀국후 반대파에 의하여  처형당함

 

2.중국의 존 로스 목사

*영어성경 조선어 번역

 

3.미국 예슈아 대학교 이기석 박사

*중국 해남도에서 희랍어 성경 중국어로 번역

*미국으로 귀환 안식년 은퇴



*1906 미국 ‘아주사’ 부흥운동

*아주사 대부흥운동(Azusa Street Revival)*

*윌리엄 시모어(William Seymour):흑인목사*

 

*Jesus is Coming Soon!  *Prepare a Bridal Gown!

*예수님 곧 오십니다  *신부예복을 준비 하세요

 

 

 

아주사 부흥운동의 흔적은 로스앤젤레스 아주사 스트리트 312번지 도쿄타운 전봇대에 부착되어 있는 아주사부흥운동에 대한 기록 간판이 전부다.그러나 아주사부흥운동은 이듬해인 1907 평양대부흥운동으로 부흥의 불길을 점화시켰다고 교회사가들은 말한다.

 

아주사 부흥운동의  목격자는 다음과 같이 아주사 부흥에 대해 말했다.

Los Angeles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임하고 있다는 뉴스가 멀리 퍼졌다악기도 사용치 않고필요치도 않았다성가대도 없었다어떤 이들에게는 천사들의 밴드 소리가 성령 안에서 들려졌고하늘의 노랫소리도 들려졌다헌금하지 않았고 집회를 광고하기 위해 안내장들이 우송된 적도 없었다 집회 뒤에 조직은 없없다하나님과 만난 자마다 자신이 성령께서 이끌고 있는 집회에 들어왔음을 금방 깨달았다 형제는 그의 기차 도시에 들어오기도 전에 부흥 능력이 임하고 있음을 느꼈다고 말했다.  Azusa 거리에 있는 석회도료로 칠해진 2 건물의 본부에 모인 사람들은 아침 10시부터  12시까지 계속되는 강력한 오순절 부흥을 체험했다. "

서울신대 교회사 박명수 교수는 “20세기에 들어서서 강력한 첫번째 부흥운동은 1904 영국의 웨일스 지방에서 일어났다웨일스 부흥운동의 소식은  널리 퍼져서 1905 인도 카시아 지방의 부흥,1906년의 미국 아주사 거리의 부흥,1907년에는 한국 평양 대부흥으로 이어졌다. 말했다.

 

 

*1907 한국 ‘평양’ 대부흥 운동

*길선주(67)*

 

1869.3.25 ~1935.11.26평안남도 강서군 고창교회에서 설교를마치고 폐회축도를 하고 뇌익혈로 영면 하셨다

 

평양 대부흥운동

平壤 大復興運動 ]

1907년 평양을 중심으로 일어나 전국 교회로 확산된 한국 교회의 대표적 부흥운동이 부흥운동은 1 6(주일평양 장대현교회에서 평양 시내 네 교회 연합집회 형태로 시작되었다교회 장소가 협소하여 여자 교인은 자기 교회에남녀 중학생과 소학생들은 자기 학교 강당에 모였고남자 교인들만 2천여 명이 장대현교회당에 모였다.

이때만 해도 한국인 
목사가 없어 부흥회 선교사들 주관으로 진행되었다한 주간 동안 길선주 장로(당시 목사 안수를 받지 않음)는 한국 최초의 새벽기도회를 통해 큰 은혜를 끼쳤다무엇보다 그는 자신이 '아간'과 같은 죄인임을 고백하며 회개했고이를 계기로 수많은 교인들의 회개가 터져나왔다. 1주간 내내 회개가 계속되자 소문을 들은 방은덕(方恩德)이라는 순포(경찰)가 흉악범을 잡으러 집회에 참석했다 자신도 회개하고 예수를 믿게 된 일화도 있다.

무르익은 집회는 1 14일 월요일 
저녁 미국 북장로교회 선교사 블레어(W.N. Blair) 설교로 절정에 달했다고린도전서 12 27 말씀으로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그리스도 지체들이라'는 블레어 선교사의 설교가 끝나고 수백 명의 성도가 통성으로 기도할 때 성령의 큰 역사가 임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죄를 대중 앞에서 구체적으로 자복하며 눈물로 회개했다반목과 질시하던 자들이 껴안고 화해하는 모습도 나타났다이런 감동적인 회개 역사는 새벽 2시까지 지속되었다.

이를 목격한 
 여자 선교사는 "입으로 고백하기 어려운 상상할 수 없는 무섭고 추한 죄악들이 쏟아져 나왔다마치 지옥 지붕이 젖혀진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고 술회했다당시 런던타임즈는 "마치 밖으로부터 뭔가 물밀듯 밀려드는 강력한 힘의 임재에 압도당한 듯했다."고 보도했다.

이런 역사는 화요일 
아침 숭의여학교에서수요일 아침에는 숭덕학교에서도 일어났다김찬성 조사가 설교할 때 어린 학생들이 큰 은혜를 받고 수업을 중지한 채 오후 1시까지 통회 자복의 기도회가 지속되었다각 곳의 여자중학교와 부녀자들의 모임에서도 이런 역사는 계속되었다.

선교사들만 모이는 
정오 기도회에도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 기도회를 30분간 연장하여 오후 2시까지 할 정도였다이 놀라운 평양 대부흥회는 그 해 봄 길선주 장로의 서울 집회에서도 나타났고이런 부흥의 불길은 전국으로 번져나갔다.

평양 대부흥운동은 
1903년 원산 부흥운동1909년 백만인 구령운동과 더불어 경건하고 건전한 부흥운동의 모델을 제시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를 질적으로 한 단계 도약시키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1907년 평양 대부흥 운동의 불씨가 되었던 교회.

사교 도사에서 평양대부흥운동의 주역이 된 길선주 목사

길선주(1869.3.25.~1935.11.26) 1869 3월 평안남도 안주에서 무관인 길봉순의 둘째로 태어났다어려서부터 한문을 배워 한학에 능했고 총기가 상당해서 주변으로부터 기대와 관심을 받았다하지만도교에 심취하여 19세 때부터 친구 김종섭(金鍾燮)으로 더불어 신선이 되려고 옥추보경(玉樞寶經)을 읽고 정좌심공(正坐心工)의 훈련을 하고 선약(신선이 되는 약)을 먹는 등 수행을 했으나 공을 들일수록 공허함을 느끼게 되었다.

암자를 찾아 100일 수행을 하고 제법 사람들을 놀라게 할 만한 재주를 보여주기도 했던 길선주였지만마음에 해결할 수 없는 짙은 공허함으로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그 때 “서양귀신이 도()를 이긴다.”는 말을 전해 듣고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마침 한때 자신과 함께 도교에 심취했던 친구 김종섭을 만나 그가 ‘야소교’에 입교했다는 말을 듣고 크게 놀랐다그리고 김종섭을 따라 마포삼열 선교사를 만나서 큰 감동을 받고그로부터 <천로역정>을 건네받아 읽던 중에 비로소 마음에 가득했던 의문들이 해결되는 기쁨을 맛보게 되었다.

마포삼열은 두 사람에게 한문으로 된 성경을 각각 주었다.원래 글을 좋아하는 길선주와 김종섭은 그 책을 받자마자집으로 돌아가서 다 읽고 결단을 내렸다길선주가 “선교사님제가 성경을 읽고 깜작 놀랐습니다.”라고 고백하자 마포삼열은 “그럼 내일이 주일인데여기 가까운 널다리교회에 오시면 더 많은 진리를 알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많이 알 수 있다는 기대에 차서 길선주는 친구 김종섭과 함께 널다리교회 참석한 후 예수를 믿기로 결심하였으며 마침내 세례교인이 되었다그 후 1898년에는 널다리교회 영수로 임명을 받고 마포삼열선교사의 일을 열심히 돕게 되었다.

길선주와 김종섭이 도가(道家), 선문교를 버리고 야소교로 개종했다는 말에 자연히 교인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널다리교회는 더 이상 몰려오는 교인들을 수용할 수가 없게 되자 장대현으로 옮기면서그곳에 기역자()교회를 신축하여 장대현교회라 불렀다. 1901년 장로 선거가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길선주 영수의 신앙심에 감복되어 그를 장로로 선출하였으며다시 마포삼열 선교사는 그 넓은 평안남도 지역에 전도를 해서 교회를 설립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갖고자신이 맡았던 장대현교회는 길선주 장로에게 맡겼다.

길선주 장로가 장대현교회에서 첫 월급을 받고 크게 놀랐다월급이 바로 6원이라는 사실 때문이다그동안 운영해 오던 한약방의 수입이 월 80원이었으니 상당한 차이가 났지만그는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기고 운영하던 약방을 처분하고 장대현교회만 열심히 섬겼다. 1905년 장대현교회 대표로 평남대리회에도 참석하는 등 장대현교회 대표자 역할을 하였다한편 가는 곳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애국을 외치며 회개운동을 부르짖었다.

“여러분지금 우리가 일본에 의해 나라를 빼앗길 위기에 놓여있습니다이 일에 대해서 우리 백성들은 각성하고 회개하며 정신 차려나라를 사랑해야 합니다.” 이미 민족애가 투철했던 길선주 장로는 장대현교회에서 매주 설교시간마다 민족애를 부르짖었다길선주 장로는 그해 9월 평양에서 모인 대한예수교장로회 독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계속하여 장대현교회 담임목사로 시무하게 되었다.

1907 1 6일부터 장대현교회는 사경회를 준비하면서 새벽기도를 시작했는데한국교회의 새벽기도와 통성기도는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며 한국교회가 특별한 때마다 통성기도로 부르짖는 역사의 시작도 이때 길선주목사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부흥사경회 중에 한 건장한 남자가 손을 들고 앞으로 나와서 “나는 이모임에서 강도들이 회개한다고 해서 쉽게 잡으려고 찾아온 순검입니다강도를 잡으면 한 계급 특진할 수 있어서 왔다가 제가 먼저 회개합니다용서해 주십시오.”라고 고백하며 통회를 했다.

이때 길선주 목사가 충격을 받고 큰 소리로 “저는 아간과 같은 사람입니다제 친구가 병으로 삶을 마감하며 부인과 아이들을 돌봐 주라고 100원을 맡겼는데 그 돈을 제가 써 버렸습니다이제야 회개합니다하나님 용서해 주세요여러분 제가 죽일 놈이었습니다.”라고 큰 소리로 통곡하며 회개를 하였다마침내 예배당은 갑자기 통회의 눈물바다가 되고 말았다길선주 목사로부터 앞장서서 복음을 전하면서 회개의 간증과 통회 자복하는 기도를 드리자 참석한 교인들이 자신의 죄를 고백하기 시작했고이윽고 선교사들 역시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면서 불길 같은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으며 가슴을 치는 회개운동으로 장대현교회 사경회는 1 13일 월요일까지 계속되었고 이어지는 성령운동은 1907년 역사적인 평양대부흥운동의 불을 집혔고 국내 교회들뿐 아니라 서방세계에까지 번져 나갔다.

그 후 길선주 목사는 사경회 강사로 여기저기 많이 불려 다녔다그는 가는 곳마다 애국심을 강조했으며이러한 그의 사상과 행적이 마침내 1919 3·1운동 애국지사 33인의 하나로 삼일독립운동의 한 축이 되기도 했다이로 인해 서대문형무소에서 2년간 옥살이를 했으나 옥살이 중에 요한계시록 만독(萬讀)을 마치면서 요한계시록을 다 외워버렸다고 하니 그의 열정이 놀랍기만 하다그는 출옥 후에도 성령의 힘으로 전국을 다니며 사경회를 이끌었으며 간도지방에 살던 우리 동포 교회에까지 성령운동을 펼쳤다.

환경이나 사람에 구애받지 않고 오직 말씀에 의지하여 사역하던 길선주 목사는 1935 1126일  평남 강서 고창교회에서 사경회마지막 날 축도하던 중 뇌출혈로 삶을 마감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