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베드로 목사 주일 설교 - 1월 20일 - *예슈아*의 절기와 종말론 제47강

by Admin posted Jan 20,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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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 베드로 목사 주일설교  *예슈아*의 절기와 종말론  제47강




Hallelujah !
*Yeshua* Ha' Mashiach !
*Yeshua*  Messiah !

*The Great Commission Declaration*
*지상대명 선언*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듣든지 아니 듣든지
*말씀을 전파 하라 !
*세상을 점령 하라 !
*천국을 침노 하라 !

*신구약 66권 성경의 저자는 "성신" 하나님 "성령" 하나님 이십니다
*구약은 옛 언약으로서 모형 이요  신약은 새 언약 으로서  원형 입니다  
*구약은 그림자로서 예언이요 신약은 실체로서 성취 입니다
*구약과 신약은 예언과 성취로 통일체로서의 연속성을 갖습니다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요4:35)
*절기 :오순절과  절기: 나팔절 사이넉달동안은 절기가 없습니다  이 넉달동안은 이방인들에게  주어진 "은총의 영혼구원 농사 기간" 으로서 신약교회 2000년 기간을  말합니다

*봄의 절기가 "이른비"라면  
*가을의 절기는 "늦은비"
*여름의  넉달동안은  "소낙비"로서 지구촌 70억 인구를위한  "이방인 추수의 절기" 입니다

*성경에서  죽음을 맛보지않고 들림을받은사람은 에녹 선지자  엘리야 선지자 단 두명뿐 입니다  
*에녹선지자는7년환난전 예수님 공중재림시 들림을 받게될  예수그리스도 예슈아의  이방신부들을 예표하며
*엘리야 선지자는7년환난중 들림을 받게될 7년환난 "전 3년반"  환난사역자들을 예표 합니다
*요한계시록 의 두증인  에녹과 엘리야  그리고 144.000 이스라엘의 전도자가  7년환난"전 3년반" 이끝나면서  들림을 받습니다
*엘리야  의 문하생  엘리사 선지자는  7년  대환난 중 "후 3년반"  환난 사역자 들을 예표  하며 7년환난"  이끝나면서  들림을 받습니다

*Yeshua Ha' Mashiach !
*예슈아*는 구원이라는 뜻의 히브리어 아람어 예수님의 본명으로서  전능자의 손 에서 못 자국을 보다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예슈아 !
*아비누  쉐바 솨마임  봐
*에니 루츠라   나수아라  셈  
*예슈아  !  *예슈아!   *예슈아 !

*예슈아 !
*내 아버지 계신 그곳 !
*나도 가고 싶어요!
*예슈아 !   *예슈아 !   *예슈아 !

*구약의 나팔절과  신약의 공중재림 을 함께 짝을 이룬것은  다음과같은 이유에서 입니다
1)첫째:여호와(예슈아)의아홉(9)절기와  하나님의  구속사가 완전히   일치 하기 때문 입니다
  1)첫째:부림절:하나님의시계
                    :역사의 표준시계
  2)둘째:유월절:십자가  
  3)셋째:무교절:안식일
  4)넷째:초실절:부활절  
  5)다섯째:칠칠절/오순절/맥추절:성령강림절
*6)여섯째:이방인추수절:
   넉달농사 / 신약교회2000년기간
7) 일곱째:나팔절:공중재림
8)여덟째:속죄절:지상재림
9)아홉째:초막절/장막절/수장절:천년왕국
10)열번째:수전절:새하늘과 새땅
                :새 예루살렘

2) 둘째: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2장17절을 통하여 모든 절기는 장래일의 그림자 다시 말하면 "장차 이루어질 일" "장래의 일 " 인 "종말의 역사를" 절기속에 그림자로 숨겨 놓았다고 증언" 하고 있습니다.

3)셋째:인류역사의척도이며 잣대인 "다니엘의 70이레" 의 70번째 마지막  한이레에 의하여, 7년 환난 전  공중 재림과 7년 환난 후  지상재림으로 양분 되면서, 이중재림론이 자연 스럽게 정립됩니다.

4)넷째: 역사의 주인공 이시요 절기의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예슈아)는 절기를 맞추어 오시게 되어 있습니다
*나팔절의 주인공이신 예슈아 는 나팔절에 공중으로 오셔서 이방신부들을 탈취하여 천상의세계로 가셔서 7년동안 "천국 혼인잔치"를 베푸십니다
반면  땅 에서는7년동안 대환난이 진행됩니다

*여호와의 절기와  하나님의 구속사는  완전히 일치합니다

첫째:*다니엘 서9장 2절 :천사장 가브리엘의 가르침을 받은  다니엘이 예레미야 서책의 70이레의 년수 와 그 비밀을 깨달은것처럼

둘째:*고린도전서 15장51절: 성령의 조명을 받은 사도 바울이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휴거의 비밀을 밝힌것과 같은 맥락에서볼때  

셋째:*골로새서2장17절:장래일의 그림자인 절기의 가르침을 통하여 절기와  구속사의 완전일치의  비밀이 밝혀진것은  하나님의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 종말의 때를 열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절기를 제정하신분도 여호와  하나님이시요 *하나님의 구속사를  입안하신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절기와  하나님의 구속사는 완전 일치 할수밖에 없습니다

*다니엘의70이레는 구약의 요한계시록 이면서 인류역사의 척도이며 잣대인 신약의 종말계시록 입니다

The Feasts of Yeshua & Eschatology
Article 47:

*예슈아의 절기와 종말론
제47강:
Jan.20, 2013 The Nineteenth Lord's Day after Rosh Hasahnah.

*오늘은 절기 강해설교 이백 열 한 번째(211) 시간으로서 주후2013년1월20일,  1월 셋 째주"유대력5773년""신년절RossHashana나팔절후열 아홉 번째  주일예배25분
강해설교 입니다                                        

*지난주 1월13일 강해설교 요약 입니다

*나라가 기울어 가던 구한말  힘없고 가난한 조선의 민초들은 생존을 위해서,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서,  가난으로 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불안감과 희망속에 새 삶을 꿈 꾸며 미지의 땅

첫째:미국 하와이 사탕수수밭 노동자로,

둘째:함경도 출신의 가난한 농민들은 국경 을 넘어 동토 러시아 연해주 농사꾼으로,

셋째:단군 고구려 옛 선조들의 한이 깃들여진  고토 중국 만주로,

넷때:일제강점기로 접어들면서, 일본은 토지조사 등의 명목으로 한인의 농토를 강제수탈 함으로서 전답을 빼았기고 일본북해도 탄광으로 사할린 으로 징용당했거나 처녀와 여자들은1932년부터 1945년까지 강제로 위안부  성노예로 끌려갔거나,

다섯째:그리고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멕시코 유카탄 반도로
*한민족  Diaspora의 이민 대행군이 시작 되었던것입니다

*조선 에서 미국 하와이 에 파송한  평신도 선교사 102명

*지금으로부터 110년전 1903년 1월13일 오전 3시30분 하와이 호놀룰루 제2부두에 정박한
겔릭호에는 사탕수수밭 노동자 한인 이민선조 제1진 102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역사의 시계바늘은 283년전 하와이에서 플리머스로 옮겨 집니다

*1620년 11월21일 종교의 자유를 위하여 메이플라워호 (Mayflower)를 타고 매사추세츠  플리머스(Plymouth)에 도착한 순례 시조들 Pilgrim  Fathers라고 불리우는  청교도 들도 102명 이었습니다

*메이플라워(Mayflower) 호는 지리탐험선이 아니고 영국에서의 종교적 박해에 못 이겨 미국으로 이민가는 일단의 청교도들을 실어 날음으로써 유명해진 배이름입니다.

*메이플라워호가 신대륙에 도착한지 310년이 지난, 1931년에 순례시조들의 후손들은 102명의 선조들의 신앙을 기념하기 위해 당시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102층 엠파이어스테이트(Empire State)빌딩을 뉴욕에 세워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하와이엔 돈 이 열리는 돈 나무가 있다

구한말인 1901년 조선 한반도는 기근이 들고 백성들은 굶주렸습니다 의료 선교사 호레이스 알렌은 조정에 '미국이민'을 권장했고 대한제국은 인력 송출을 위해 '수민원을 설립했습니다
백성이 외국에 나갈 수 만있다면 식량문제를 해결할수있다 믿은 고종 황제도 백성들의 미국행을 권장했습니다

*1902년 12월22일 감리교인 50명, 인천 제물포항 노동자 20명, 농부 등 전국에서 자원한 51명 등 총121명이 오늘날 여권인 '집조'를 손에 쥐고 미국 상선 겔릭호에 승선했습니다
*선창가에 나온 존스 목사는 이들의 아메리칸 드림을 축복했습니다 이중 일본에서 신체검사에 통과하지 못한 19명이 중도 탈락하고 남은 102명은 추운 겨울바다를 건너 1903년 1월13일 마침내 하와이 호놀룰루에 입항했습니다 이중 신체검사를 통과한
남자 48명, 여자16명  아이 22명 총86명이 '오하우'섬 모쿠레아 사탕수수 농장에서 한인 이민사의 닻을 올렸습니다

*102명 가운데 50명은 인천 내리 감리교회 교인들로서 하와이에 복음을 전하러 온 평신도 선교사들 이라고 할 수있습니다. 그래서 한인 이민을 제2의 청교도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인 이민 선조의 장밋빛 아메리칸 드림은 말 그대로 '꿈'이었습니다 이들에게 닥친것은 뙤약볓 아래에서 최저임금만 받으며 사탕수수와 파인애플 농사를 짓는 고된 삶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일본과 을사보호조약으로 외교권이 박탈된 1905년까지  이민선조 7226명이 미국행을 택했습니다
수민원이 생겨 정식으로 하와이로 이주하던 노동이민은 1905년 일본의 저지로 중단됩니다.

*사진신부(조선처녀):
*사진신랑(사탕수수밭:할아버지):

1910년부터 1925년까지 *고공덕 *천연희 *유분조 등 '사진신부' 950여명은 조선에서 남편 될 남자의 사진만 보고 미국행 배를 탔습니다
*2005년 12월 미국 연방의회는 매년1월13일을 '미주한인의날'(Korean American Day)로 제정 선포한바 있습니다

*예슈아 대학교 학장님 한 분의 조부가 사탕수수 농장 이민 1세대 이시고  아버지 목사님이 2세대 이십니다

*강제이주  76주년 맞은 고려인
올해로 고려인 강제이주 76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1937년 스탈린 정권은 정치적인 이유로 소수민족들의 집단 강제이주를 단행했습니다. 당시 약 20만명의 고려인이 연해주를 중심으로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이분들은 구한말 가뭄을 피해 이주했던 초기 정착민을 포함하여 대부분 일제 강점기에 정치적 탄압을 피해 이주하였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신한촌이 있는 데가 러시아 연해주라는 곳입니다. 연해주는 항일투쟁의 병참기지를 했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다시말해서 항일투쟁의 해외 중심지였던 것입니다. 이들은 척박한 땅을 일궈 쌀농사를 정착시켰고, 100여개의 민족학교를 만들어서 어린 자녀들에게 한글을 잊지 않게 하고 민족적 자긍심을 일깨워 주기도 하면서 현지 주민과의 평화적 관계를 이루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스탈린은 일본군의 첩자역할을 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약 20만명의 고려인을 화물칸에 강제로 태워 중앙아시아로 이주시키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2000명에 이르는 지식인들은  총살 당하고, 이동 과정에서 20%에 이르는 어린아이들은 목숨을 잃고 열차 밖으로 내던져 졌습니다. 어린 자식의 송장을 부여안고 울분을 터뜨리는 아낙은 홧병에 쓰러져 갔습니다. 대소변을 제대로 볼 수 없는 상황에서 분변의 악취에 시달려야 했고 그 자리에서 허기를 채우기 위해서 급조한 취사시설로 목숨을 연명해나갔습니다. 이에 조금이라도 항의하는 자는 어디론가 끌려가 생사를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그들에 품안에는 어디로 끌려갈지 모르지만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한 볍씨가 소중하게 안겨져 있었습니다.
9000여 킬로미터. 난방시설이 없는 화물칸에서 두달여 동안 시베리아 칼바람이 가슴을 도려내 가도 그들은 중앙아시아 이름모를 곳에 끝내 도착하였습니다.

*고려인이 ‘역사의 먼지’ 될라
*말 타고, 트럭 타고…
*집단농장 찾아 한국어 공연

80년 이어온 카자흐 ‘고려극장’ 유랑극단

1937년 8월 21일. 러시아 극동지방에 거주하던 조선인들을 강제 이주시키라는 스탈린의 비밀지령이 떨어졌습니다. “일본 정보원이 침투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목적”때문에. 9월 9일부터 시작된 강제 이주 정책에 따라 20여만 명의 한인이 영문도 모른 채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기차에 올라타야 했습니다. 추수한 농작물은 제값도 받지 못하고, 변변한 살림살이 하나 챙기지 못한 채. 농기구와 동물은 소지할 수 있다고 했지만 지붕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기차는 사람이 타기에도 비좁았습니다. 40여 일의 이동 과정에서 추위와 굶주림과 질병으로 숱한 노인과 부녀자와 어린이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서쪽으로, 서쪽으로 하염없이 달리던 기차가 멈춘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습니다. 메마르고 거친 바람과 살을 에는 겨울 추위가 이들을 괴롭혔습니다. 땅굴을 파거나 마구간, 돼지우리에라도 짐을 풀어야 했습니다. 현지인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한인들은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했고, 악착같이 가족들을 부양했습니다. 조국에서 1만㎞나 떨어진 낯선 땅 중앙아시아에서 그들은 그렇게 조금씩 뿌리를 내려갔습니다. 하루하루가 처절한 생존이었던 그들에게 단 하나의 위로는 공연이었습니다. 고려극장 단원들이 우리말로 선보이는 ‘춘향전’과 ‘심청전’을 보며 고향을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육자배기 한 자락에 울고 웃으며 부모형제를 떠올렸습니다.

* 올해는 고려극장이 설립된 지 80주년, 한인들의 중앙아시아 정착 76주년, 그리고 한국이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5개국과 국교를 수립한 지 2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입니다.

원동지방 고려극장’
중앙 아시아 한인의 한국어 교사 이자 메신저

19세기 후반 격동의 구한말. 조선땅을 떠난 사람들이 러시아 극동 연해주 일대에 새 터전을 마련했습니다. 흥이 많은 조선인들이 자리를 잡은 곳마다 크고 작은 예술단이 생겨났습니다. 1932년 9월 9일, 블라디보스토크의 한 담배공장에서 조직된 예술단을 주축으로 ‘원동지방 고려극장’이 창립됐습니다. 신파극을 배격하고 사실주의에 입각한 연극을 추구한 유랑극단이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말로 공연을 해왔다는 것입니다. 한국 작품은 물론 러시아 작품도 번역해 무대에 올렸습니 이것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고려극장의 전통입니다. 1938년 스탈린이 고려인 학교와 한국어 수업을 폐지하면서 한국어 공연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습니다” 고려일보에서 주필까지 지내고 현재 고려극장에서 문예부 부장으로 일하고 있는 최영근(73)씨의 말입니다
창단 5주년을 맞은 고려극장도 강제 이주의 파란을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단원들은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으로 흩어졌고, 카자흐스탄에서도 크질오르다와 우슈토베를 전전하다 68년에야 알마티에 자리를 잡습니다.

하지만 유랑극단의 진가는 강제 이주 후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한인들 집단농장을 부지런히 찾아다니며 춤으로, 노래로, 연극으로 실향의 설움을 달래주었습니다. ‘고려인 강제 이주’를 주제로 카자흐스탄 국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김상욱(45) 한인일보 발행인은 “이들에게 공연은 단순한 놀이가 아닌 민족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라고 말합니다. 부모님이 모두 고려극장 단원이었고 본인도 고려극장에서 가수로 활약 중인 김조야(61•카자흐스탄 공훈배우)씨는 “한 번 출장 공연을 가시면 6개월간 안 돌아오신 적도 있었다”라며 “말 타고, 트럭 타고, 배 타고 짐도 직접 이고 지고 다녀야 했기에 풍랑 등 큰 위험에 빠진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회상합니다.

유랑극단의 더욱 중요한 역할은 메신저였습니다. 91년부터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문화교류 활동을 펼쳐온 "비목"의 작사자 한명희(73) 전 국립국악원장은 “중앙아시아 곳곳에 흩어진 한인들은 가족, 친지의 안위가 궁금했고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없던 상황에서 고려극장 유랑극단은 이들의 소식을 전하고 또 사람을 찾아주는 매우 중요한 통로였다”고 설명합니다.

1980년대 후반 소련의 와해와 독립국가의 탄생이라는 격변기와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명맥을 유지해 온 고려극장은 창단 70주년인 2002년 드디어 숙원을 이룹니다. 낡은 영화관 건물을 고쳐 독립 건물과 무대를 갖게 된 것. 이날 개관식에 참석한 누르술탄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카자흐스탄에 거주하면서 고려인은 역사의 먼지가 되지 않았고, 동화되지도 않았으며, 자신의 고유 문화와 전통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며 카자흐스탄의 사회, 경제 및 정신적 발전에 커다란 기여를 했다”고 치하했습니다.
이 말은 130여 개 민족이 공존하는 다민족 국가 카자흐스탄에서 고려극장이 국가의 지원을 받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예슈아 대학교 총장 현 베드로 박사는 3개월전 유럽 선교여행때 체코 프라하에서 현 카자흐스탄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대통령을 만난적이 있습니다

Welcome To Prague, Mr.President
How are You doing !  Nice to meet You,
I am a Pastor,Missionary, from USA.
Korean American  Enjoy Here!

만들어 온 사람들, 만들어 갈 사람들

고려극장은 알마티 시내에서 북쪽으로 약 30분 정도 떨어진 고즈넉한 동네에 있습니다. 정문 앞에는 러시아어로 ‘서울’이라고 쓴 파란색 버스가 서 있었습니다다. 2004년 알마티를 방문한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기증한 것으로 시내 중심부에서 극장까지 관객을 실어나르는 셔틀버스 역할을 합니다.

오늘은 말씀을 여기서 마치도록 하시겠습니다

다음시간은
*다시 시작하는 연해주 고려인
*카자흐스탄고려인
*중국속의 작은한국 연변 조선족 자치주
*중국내 제2의 유학천국 연변
*3•1운동 이후 한인들은 일본으로 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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