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슈아*의 절기와 종말론 제48강 *현 베드로 목사

by Admin posted Feb 04,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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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슈아*의 절기와 종말론 제48강  *현 베드로 목사



Hallelujah !
*Yeshua* Ha' Mashiach !
*Yeshua*  Messiah !
*The Great Commission Declaration*
*지상대명 선언*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듣든지 아니 듣든지
*말씀을 전파 하라 !
*세상을 점령 하라 !
*천국을 침노 하라 !

*신구약 66권 성경의 저자는 "성신" 하나님 "성령" 하나님 이십니다
*구약은 옛 언약으로서 모형 이요  신약은 새 언약 으로서  원형 입니다  
*구약은 그림자로서 예언이요 신약은 실체로서 성취 입니다
*구약과 신약은 예언과 성취로 통일체로서의 연속성을 갖습니다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요4:35)
*절기 :오순절과  절기: 나팔절 사이넉달동안은 절기가 없습니다  이 넉달동안은 이방인들에게  주어진 "은총의 영혼구원 농사 기간" 으로서 신약교회 2000년 기간을  말합니다

*봄의 절기가 "이른비"라면  
*가을의 절기는 "늦은비"
*여름의  넉달동안은  "소낙비"로서 지구촌 70억 인구를위한  "이방인 추수의 절기" 입니다

*성경에서  죽음을 맛보지않고 들림을받은사람은 에녹 선지자  엘리야 선지자 단 두명뿐 입니다  
*에녹선지자는7년환난전 예수님 공중재림시 들림을 받게될  예수그리스도 예슈아의  이방신부들을 예표하며
*엘리야 선지자는7년환난중 들림을 받게될 7년환난 "전 3년반"  환난사역자들을 예표 합니다
*요한계시록 의 두증인  에녹과 엘리야  그리고 144.000 이스라엘의 전도자가  7년환난"전 3년반" 이끝나면서  들림을 받습니다
*엘리야  의 문하생  엘리사 선지자는  7년  대환난 중 "후 3년반"  환난 사역자 들을 예표  하며 7년환난"  이끝나면서  들림을 받습니다

*Yeshua Ha' Mashiach !
*예슈아*는 구원이라는 뜻의 히브리어 아람어 예수님의 본명으로서  전능자의 손 에서 못 자국을 보다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תשווע
האבא שלי נמצא שם
אני אשמח ללכת
תשוועו תשוועו תשווע

*예슈아 !
*아비누  쉐바 솨마임  봐
*에니 루츠라   나수아라  셈
*예슈아  !  *예슈아!   *예슈아 !

Yeshua !
*My Father is there !
*I'd love to go !
*Yeshua ! *Yeshua ! *Yeshua !

*예슈아 !
*내 아버지 계신 그곳 !
*나도 가고 싶어요!
*예슈아 !   *예슈아 !   *예슈아 !

*구약의 나팔절과  신약의 공중재림 을 함께 짝을 이룬것은  다음과같은 이유에서 입니다
1)첫째:여호와(예슈아)의아홉(9)절기와  하나님의  구속사가 완전히   일치 하기 때문 입니다
  1)첫째:부림절:하나님의시계
                    :역사의 표준시계
  2)둘째:유월절:십자가  
  3)셋째:무교절:안식일
  4)넷째:초실절:부활절  
  5)다섯째:칠칠절/오순절/맥추절:성령강림절
* 6)여섯째:이방인추수절:
   넉달농사 / 신약교회2000년기간
7) 일곱째:나팔절:공중재림
8)여덟째:속죄절:지상재림
9)아홉째:초막절/장막절/수장절:천년왕국
10)열번째:수전절:새하늘과 새땅
                :새 예루살렘

2) 둘째: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2장17절을 통하여 모든 절기는 장래일의 그림자 다시 말하면 "장차 이루어질 일" "장래의 일 " 인 "종말의 역사를" 절기속에 그림자로 숨겨 놓았다고 증언" 하고 있습니다.

3)셋째:인류역사의척도이며 잣대인 "다니엘의 70이레" 의 70번째 마지막  한이레에 의하여, 7년 환난 전  공중 재림과 7년 환난 후  지상재림으로 양분 되면서, 이중재림론이 자연 스럽게 정립됩니다.

4)넷째: 역사의 주인공 이시요 절기의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예슈아)는 절기를 맞추어 오시게 되어 있습니다
*나팔절의 주인공이신 예슈아 는 나팔절에 공중으로 오셔서 이방신부들을 탈취하여
천상의세계로 가셔서 7년동안 "천국
혼인잔치"를 베푸십니다
반면  땅 에서는7년동안 대환난이 진행됩니다

*여호와의 절기와  하나님의 구속사는  완전히 일치합니다
첫째:*다니엘 서9장 2절 :천사장 가브리엘의 가르침을 받은  다니엘이 예레미야 서책의 70이레의 년수 와 그 비밀을 깨달은것처럼

둘째:*고린도전서 15장51절: 성령의 조명을 받은 사도 바울이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휴거의 비밀을 밝힌것과 같은 맥락에서볼때  

셋째:*골로새서2장17절:장래일의 그림자인 절기의 가르침을 통하여 절기와  구속사의 완전일치의  비밀이 밝혀진것은  하나님의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 종말의 때를 열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절기를 제정하신분도 여호와  하나님이시요 *하나님의 구속사를  입안하신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절기와  하나님의 구속사는 완전 일치 할수밖에 없습니다

*다니엘의70이레는 구약의 요한계시록 이면서 인류역사의 척도이며 잣대인 신약의 종말계시록 입니다

The Feasts of Yeshua & Eschatology
Article 48:
*예슈아의 절기와 종말론
제48강:

Feb.3, 2013 The Twenty-First Lord's Day after Rosh Hasahnah.
*오늘은 절기 강해설교 이백 열 두 번째(212) 시간으로서 주후2013년2월3일,  2월 첫 째주"유대력5773년""신년절RossHashana나팔절후스물 한 번째  주일예배25분강해설교 입니다  

*1620년 예수 한번 잘 믿어 보겠다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 플리머스(Plymouth)에 도착한 순례
시조들 Pilgrim  Fathers라고 불리우는
청교도 도 102명 이요  283년이 지난후

*1903년 조선 에서 미국 하와이사탕수수 밭으로 파송한  평신도 선교사도  102명 이었습니다
*102 명의 숫자는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축복의 숫자요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은총의 숫자입니다
*플리머스에 도착한 102명은 미국을 청교도 국가로 세우는데 초석이 되었으며  10만명의 선교사를 파송하는 세계 제1위의
선교대국으로 만들기위한 하나님의 청사진 이었습니다    한편

*하와이에 도착한 102명의 평신도 선교사도
한국을 세계 제2위의 선교 대국으로  쓰시기위한 하나님의 수순 이었습니다

*선교하는 민족 선교하는 국가는하나님께서 복을 쌓을곳이 없도록 넘치도록
부어주십니다

*조그마한 섬나라 영국이 성경을 번역하기 시작하면서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축복을 받았듯이  Barton Touch  이를 승계한 미국이 세계 최대강국의 영예를 누리고 있지 않씁니까

*허리는 동강나고 기름 한방울 나지않는 나라인 대한민국이 세계8대강국에 진입한것은 무엇을 의미 합니까

*세계에 3대 Diaspora 민족이 있습니다
*Diaspora란 흩어진 민족을 읽컷는 말 입니다

첫째:중국 화교 4500만명:돈버는 일에는일등민족 입니다  그러나
*선교하는 화교 들어본적이 없습니다

둘째:유대인 1200만명:세계 최우수민족으로서 아직도 "메시야"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셋째:한국동포:1000만:유대인을 앞서가려는 민족으로서 2-3가정이 모이면 교회부터 질
생각을하고  교회짓고나면 100$ 짜리 선교부터시작하는 아주 별난 민족입니다

*유대인은 노아홍수 이후 4대:에벨, 5대:장자 벨렉, 9대:데라의 후예이고
*한국인은 노아홍수 이후 4대:에벨, 5대:차자 욕단의 후예 입니다 그러니까 유대인과 한국인은 4촌 지간이 됩니다

*유대인과 한국인의 공통점:
한국인은 유대인의 습성과 풍습이 놀랍도록 유사합니다. 한국인과 유대인 모두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외출시 얼굴을 가립니다.
양 민족 모두 돌제단을 쌓아서 제사를 지내고, 부모를 "에미", "에비"라고 부릅니다.
한번 물어 보세요
What's Your "에미",  What's Your"에비",
Oh !  My "에미",  My Mother is-----
My "에비", My Father is-----
또한 장례식에서 베옷을 입고 곡을 하며, `아이고`, `아이고` 하며 곡을 합니다.
I  Go !   I Go !  나는 간 다 !   간 다!  하늘나라로

유대인이 유월절에 문설주에 양의 피를 뿌리듯이 한국인은 이와 비슷하게 붉은 팥죽을 뿌립니다.
*한국인은 동짓날 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예표하는 붉은팥죽을 뿌리면서 이 악귀야 물러가라 ! 이 썩은 귀신아 물러가라 !

백의 민족 한국인은 유대인과 같이 근면하고, 흰옷을 즐겨 입으며, 종교성이 강하고, 장사 수완이 좋습니다. 그래서 예전에 유대인이 미국 흑인 지역에서 하던 사업인 야채가게 수퍼마켓과 세탁소, 의류사업 등을 그대로 하고 있습니다. 이를 놓고 볼 때 한국인이 유대인과 비슷한 핏줄임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맡은자인 유대인의 혈통으로 이땅에 오셨으나 저들은 메시야로 받아들이지 않음은 물론  도리혀 십자가에 못 밖음으로서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전 세계로 흩어지는 비운의 Dispora 민족이 되었던 것입니다
*복음을 맡아 보존하고 전파하여야할 사명은 내팽개쳐 버리고 지금까지 가짜 메시야를 기다리는 중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저들에게 맡겼던 복음전파의 사명을 이방인인 사촌 한민족에게 넘겨 주셨습니다  우리 한민족이 세계 제2위의 선교대국이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할렐루야 !
*Yeshua Ha' Mashiach !
*하나님 아버지 감사 합니다
*우리 한민족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오실때까지 이 사명 잘 감당케 하옵소서
*주여!
*영광을 영원무궁 세세토록 받으시옵소서
*Yeshua Shalom !

*저 지난주에 이어
*다시 시작하는 연해주 고려인*
*카자흐스탄 고려인*
*중국속의 작은한국 연변 조선족 자치주*
*중국내 제2의 유학천국 연변*
*조선족에 대한 정의와 연해주 이주*
*3•1운동 이후 한인들은 일본으로 이주*
*역사의 희생자들과 그 후예*    *잊혀져가는 유카탄 멕시코 이민*

에 대하여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시작하는 연해주 고려인
한민족 협력' 새 거점으로 부상
고려인들에게 러시아 극동의 연해주는 영원한 마음의 고향입니다.
*브라질 교포 보고 고향이 어디십니까 물어보면
네 제고향은 브라질 입니다
*정 들면 다 고향이지요
옛소련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 49만 고려인의 선조들이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에 국경을 넘어 첫발을 내디딘 곳이 바로 이 곳입니다. 1937년 소련 정권의 강제이주로 고려인들은 송두리째 수천㎞ 떨어진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옮겨졌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연해주에는 다시 고려인이 모여들고 있습니다.
* 블라디보스토크와 하바로프스크를 포함한 연해주에는 최소 2만~3만명의 고려인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또 이 곳에는 중국의 조선족 동포와 북한에서 돈벌이 나온 사람들까지 모여 있어 마치 `한민족의 용광로' 같은 곳이 되고 있습니다.
연해주에서 고려인이 가장 많이 살고 있다는 우수리스크에서 만난 백 조야(58•여)는 부모님의 고향으로 회귀한 경우입니다. 우수리스크에 살다 중앙아시아 우즈베크로 강제이주당한 그의 부모는 늘 “극동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고, 그에게도 극동은 미지의 고향이었던 것입니다.
*연해주는 최초 고려인 정착지라는 상징성과 함께, 지난 10년 동안 고려인의 재유입 소식이 전해지면서 한국의 관심이 비교적 집중된 곳입니다.

*카자흐스탄고려인
카자흐 최대의 도시이자 옛수도인 알마티에서 만난 전 라지온(34•작곡가)은 세계 각지의 동포 음악가들이 한데 모여 페스티벌을 여는 게 꿈입니다.
92년 한국 국립극장 초청으로 3개월 동안 서울에 머물렀습니다. 판소리와 민요를 처음 접하면서 눈물을 줄줄 흘렸습니다. “판소리를
들으며 뭔가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내 피가 바로 이것이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는 “그때 한국 음악을 많이 먹었다”고 표현했습니다. 그는 “민족음악과 현대음악이 함께 어울리는 오페라•심포니를 하고 싶다고 자신의 비젼을 밣히기도 했습니다
*예슈아 대학교 학장님 한 분이 현재 '카자흐' 에서 사역하시고 계십니다

*중국속의 작은한국 연변 조선족 자치주
요즘 구한말 일본과 중국 간 맺은 간도협약 100년이 지나 한국 내에서도 간도땅 찾기 운동이 한창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이 인터넷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 간도 땅에 구한말 우리 선조가 처음 일군 땅이 바로 지금의 연변 조선족 자치주 지역입니다.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중심도시인 연길시는 인구 50만의 중국의 작은 도시 중 하나입니다.

*예슈아 대학교 부총장 강호빈 박사가 연길시 에서 순교의 반열에 오르 셨습니다연변조선족자치주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지역이 여럿 있습니다. 우리 선조가 간도간척을 위해 처음으로 개간한 땅이 바로 용정시며 두만강을 두고 북한과 마주보고 있는 도문시, 백두산 아래 동네 안도현, 중국과 북한, 러시아 3개국이 경계를 이루고 있는 훈춘시 등이 있습니다.

이 중 연길시는 자치주의 주도로 길림성 내에서 인구 규모로는 성도인 장춘과 새롭게 한족중심 도시로 커가고 있는 길림시, 돈화시 등에 이어 4번째로 큰 도시입니다.
*예슈아 대학교 총장 현 베드로 박사는 독립투사를 아버지로 장춘시 농안현 방신고우 에서 출생 했습니다

조선족자치주는 남한 면적보다 조금 작은 규모로 조선족은 100만 명 정도이며 전체 인구의 40% 정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이 땅은 고대로부터 고구려와 발해의 본고장이며 일제 강점기 간도개간과 독립운동의 장이기도 합니다.

*중국내 제2의 유학천국 연변*
연변과학기술대학은 중국최초로 재미동포 한국인 김진경 박사가  건립한 대학입니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지금은 중국 100대 대학에 이름을 올리며 취업이 강한 대학으로 신입생들에게 인기가 좋은 편입니다.
학생의 80%정도가 조선족 학생이며 나머지 한족과 소수민족, 해외 유학생들이 함께 공부하고 있습니다. 정식명칭은 연변대학 내 과학 기술학원 입니다. 연변대학 부속학원처럼 외양을 갖추고 있지만 독립된 캠퍼스와 자체적인 대학교육 및 신입생 선발 등으로 사실상 중국내 한국대학 이기도 합니다.

*북한에도 한국인이 세운 평양 과학 기술대학이 있습니다  평양과기대는 연변 과학기술대학 김진경 총장과 한국의 소망교회 곽선희 목사가 주축이되어 건설한 대학으로서 이곳에서 IT교육을 받은 북한의 젊은이들이 대한민국을 향해 디도스 공격을 감행했다고 예측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연변은 생활 자체가 한국과 비슷하다보니 중국내에서도 유학생 비율이 북경 다음으로 높은 곳입니다. 2007년 통계에 따르면 중국내 한국 유학생은 총 7만7천 명 정도로 북경이 3만여 명으로 가장 많고 길림성이 1만2천여 명으로 그 다음을 잇고 있습니다.   참고로
*미국내 한국 유학생수는  10만5천명 으로서 절대다수의 한국 유학생이 미국과 중국에 몰려 있다고  볼수 있습니다

*조선족에 대한 정의와 연해주이주 *구한말부터 현재까지 중국에서 활동하는 한민족 을 조선족으로 칭합니다.

1860년 흉작이 극에 달하였고, 약 10년에 걸친 흉년으로 헐벗은 농민들은 경작지를 찾아 두만강과 압록강을 건너 사람이 별로 살지 않는 간도로 넘어가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중국 조선족의 본 격적 이민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계속적인 외세의 침노로 나라의 안위가 위태해지자 새로운 생활 터전을 찾아 중국(동북)과 러시아(시베리아)로의 이주가 더욱 증가하게 됩니다.
1860년 러시아의 연해주로 한인들이 이주한 기록이 나옵니다. 이때부터 함경북도 산간지대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연해주로 이주하였고, 특히 1869년의 흉년으로 많은 농민들이 연해주와 만주로 이주하였습니다.
시간이 경과하면서 러시아의 연해주와 중국의
북간도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증가하여 갔으며
특히 20세기에 들면서 우국지사들이 유민의
대열에 참가하여 러시아와 중국으로 이주합니다
특히 한국이 일본에게 외교권을 빼앗기던 1905년, 한국이 일본에게 합방 당하던 1910년, 그리고 3•1운동이 일어난 1919년 우국지사들의 큰 물결이 북방으로 흘러갑니다. 수민원이 생겨 정식으로 하와이로 이주하던 노동이민은 1905년 일본의 저지로 중단됩니다.

*3•1운동 이후 한인들 일본으로 이주
3•1운동 이후 한인들은 일본으로 이주하기 시작합니다. 당시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로 일본영토에 포함되었으나 일본으로 이주하는 사람은 적었습니다. 일본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호황기를 맞아 산업이 부흥하고 부족한 노동력을 한국에서 충당하기 위해 한인들을 유인하는 정책을 썼습니다  처음 일본으로 이주한 사람들은 집에 처자를 둔 농민들로 1∼2년 일본에서 돈벌이를 하고 돌아오려는 임시 노동자들 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도시노동자의 수도 증가하였고 체류기간도 장기화하는 경향이 생겨 났습니다. 일본은 1932년 중국에 만주국을 건립하더니,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켰고, 1939년에는 연합국을 상대로 태평양전쟁을 감행하였습니다. 이런 가운데 부족한 노동력을 한국에서 징발하여 처음에는 탄광, 군수공장, 국가시설 건립에 동원하였고 후기에는 징용과 징병으로 징집하여 갔습니다.해방이 되던 1945년 8월, 일본에는 200만명의 한인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해방을 맞아 귀국을 서둘렀으나 배가 부족하고 시간이 경과하면서 귀국조건이 까다로워졌습니다 마침내 한국으로의 도항작업이 끝났을 때에는 60만 명의 한인들이 일본에 남게 되었습니다

*역사의 희생자들과 그 후예 *잊혀져가는 유카탄 멕시코 이민
1905년4월 4일.조선인1033명이인천 제물포항을 떠나 멕시코 유카탄 반도에
5월 중순에 도착 합니다  *멕시코 동남부의 유카탄 반도는 마야 문명의 본거지인 동시에 칸쿤같은 세계적인 휴양지가 있는 곳입니다.
문화와 빼어난 자연환경이 어우러진 곳이지만 우리에겐 사기 노예이민과  장미희가 주연한 영화 <애니깽(Henequen) 선인장:용설란>으로 우선 기억됩니다.
영국계 멕시코인 존 마이어스와 일본 이민회사의 협잡으로 `지상낙원'의 환상을 꿈꾸며 유카탄의 에네켄(용설란) 농장을 찾았습니다. 그들에게 닥친 현실은 노예와 다름없는 강제노동과 토르티아(옥수수 전병)로 끼니를 떼우는 굶주림이었습니다. 계약기간 4년이 지난 뒤에는 조국이 한일합방의 위기에 처하면서 귀향의 희망마저 잃어버렸습니다.

한세기 가까이 지난 지금 이들의 후예는 3만~5만명으로 늘어 멕시코 곳곳으로 퍼졌지만, 한국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마야계와 혼혈이 이뤄지면서 100% 한국인의 피를 가진 사람도 거의 없습니다. 3세는 90%, 4세는 99% 정도가 혼혈입니다. 같은 피의 배우자를 찾기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이들 후예의 생활도 현지인과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 60년대 이후의 동포 이민자가 중산층 이상의 생활을 누리는 데 비해  후예들의 90%는 월수입 $30.(25만원 )이하의 하층생활을 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카탄에 사는 후예 3천여명 가운데 90% 가량이 날품팔이 생활로 끼니를 어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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