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슈아*의 절기와 종말론 제52강 *현 베드로 목사

by Admin posted Mar 17,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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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슈아*의 절기와 종말론 제52강 *현 베드로 목사




Hallelujah !
*Yeshua* Ha' Mashiach !
*Yeshua*  Messiah !

*The Great Commission Declaration*
*지상대명 선언*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듣든지 아니 듣든지
*말씀을 전파 하라 !
*세상을 점령 하라 !
*천국을 침노 하라 !

*신구약 66권 성경의 저자는 "성신" 하나님 "성령" 하나님 이십니다
*구약은 옛 언약으로서 모형 이요  신약은 새 언약 으로서  원형 입니다  
*구약은 그림자로서 예언이요 신약은 실체로서 성취 입니다
*구약과 신약은 예언과 성취로 통일체로서의 연속성을 갖습니다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요4:35)
*절기 :오순절과  절기: 나팔절 사이넉달동안은 절기가 없습니다  이 넉달동안은 이방인들에게  주어진 "은총의 영혼구원 농사 기간" 으로서 신약교회 2000년 기간을  말합니다
*봄의 절기가 "이른비"라면  
*가을의 절기는 "늦은비"
*여름의  넉달동안은  "소낙비"로서 지구촌 70억 인구를위한  "이방인 추수의 절기" 입니다

*성경에서  죽음을 맛보지않고 들림을받은사람은 에녹 선지자  엘리야 선지자 단 두명뿐 입니다  
*에녹선지자는7년환난전 예수님 공중재림시 들림을 받게될  예수그리스도 예슈아의  이방신부들을 예표하며
*엘리야 선지자는7년환난중 들림을 받게될 7년환난 "전 3년반"  환난사역자들을 예표 합니다
*요한계시록 의 두증인  에녹과 엘리야  그리고 144.000 이스라엘의 전도자가  7년환난"전 3년반" 이끝나면서  들림을 받습니다
*엘리야  의 문하생  엘리사 선지자는  7년  대환난 중 "후 3년반"  환난 사역자 들을 예표  하며 7년환난"  이끝나면서  들림을 받습니다

*Yeshua Ha' Mashiach !
*예슈아*는 구원이라는 뜻의 히브리어 아람어 예수님의 본명으로서  전능자의 손 에서 못 자국을 보다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תשווע
האבא שלי נמצא שם
אני אשמח ללכת
תשווע    תשווע   תשווע

*예슈아 !
*아비누  쉐바 솨마임  봐
*에니 루츠라   나수아라  셈
*예슈아  !  *예슈아!   *예슈아 !

Yeshua !
*My Father is there !
*I'd love to go !
*Yeshua ! *Yeshua ! *Yeshua !

*예슈아 !
*내 아버지 계신 그곳 !
*나도 가고 싶어요!
*예슈아 !   *예슈아 !   *예슈아 !

*구약의 나팔절과  신약의 공중재림 을 함께 짝을 이룬것은  다음과같은 이유에서 입니다

1)첫째:여호와(예슈아)의아홉(9)절기와  하나님의  구속사가 완전히   일치 하기 때문 입니다
  1)첫째:부림절:하나님의시계
                     :역사의 표준시계
  2)둘째:유월절:십자가  
  3)셋째:무교절:안식일
  4)넷째:초실절:부활절  
  5)다섯째:칠칠절/오순절/맥추절:성령강림절
* 6)여섯째:이방인추수절:
   넉달농사 / 신약교회2000년기간
7) 일곱째:나팔절:공중재림
8)여덟째:속죄절:지상재림
9)아홉째:초막절/장막절/수장절:천년왕국
10)열번째:수전절:새하늘과 새땅
               :새 예루살렘

2) 둘째: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2장17절을 통하여 모든 절기는 장래일의 그림자 다시 말하면 "장차 이루어질 일" "장래의 일 " 인 "종말의 역사를" 절기속에 그림자로 숨겨 놓았다고 증언" 하고 있습니다.

3)셋째:인류역사의척도이며 잣대인 "다니엘의 70이레" 의 70번째 마지막  한이레에 의하여, 7년 환난 전  공중 재림과 7년 환난 후  지상재림으로 양분 되면서, 이중재림론이 자연 스럽게 정립됩니다.

4)넷째: 역사의 주인공 이시요 절기의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예슈아)는 절기를 맞추어 오시게 되어 있습니다
*나팔절의 주인공이신 예슈아 는 나팔절에 공중으로 오셔서 이방신부들을 탈취하여
천상의세계로 가셔서 7년동안 "천국
혼인잔치"를 베푸십니다
반면  땅 에서는7년동안 대환난이 진행됩니다

*여호와의 절기와  하나님의 구속사는  완전히 일치합니다

첫째:*다니엘 서9장 2절 :천사장 가브리엘의 가르침을 받은  다니엘이 예레미야 서책의 70이레의 년수 와 그 비밀을 깨달은것처럼

둘째:*고린도전서 15장51절: 성령의 조명을 받은 사도 바울이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휴거의 비밀을 밝힌것과 같은 맥락에서볼때  

셋째:*골로새서2장17절:장래일의 그림자인 절기의 가르침을 통하여 절기와  구속사의 완전일치의  비밀이 밝혀진것은  하나님의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 종말의 때를 열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절기를 제정하신분도 여호와  하나님이시요 *하나님의 구속사를  입안하신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절기와  하나님의 구속사는 완전 일치 할수밖에 없습니다

*다니엘의70이레는 구약의 요한계시록 이면서 인류역사의 척도이며 잣대인 신약의 종말계시록 입니다

The Feasts of Yeshua & Eschatology
Article 52:
*예슈아의 절기와 종말론
제52강:

Mar.17, 2013 The Twenty-Seventh Lord's Day after Rosh Hasahnah.
*오늘은 절기 강해설교 이백 열 여섯 번째(216) 시간으로서 주후2013년3월17일,  3월 셋 째주"유대력5773년""신년절RossHashana나팔절후스물 일곱 번째  주일예배20분강해설교 입니다  

*구약성경은 인류의 기원과 히브리 민족의 탄생과 이스라엘 국가의 형성과정을 통한 예수그리스도 의 출현을 알리는 하나님의 청사진 입니다

*세계의 Dispora 동이족의 후예한 민족의 기원과 흩어짐

*성경적 관점에서 본 한민족의 기원과 흩어짐의 계속입니다

*지난주 강해설교에서는
첫째: *고대 일본에 온 백제인
둘째: *고대 일본에 온 고구려인
셋째: *고대 일본에 온 신라인
넷째: *이스라엘의 아라랏 산 여름축제
다섯째:일본의 기온사이(祗園祭) 여름축제
여섯째: 일본의 신도(神道)
일곱째: 한민족의 피동적 이주,망명이주및포로
여덟째: 재외동포 분포현황
등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1) 독립국가연합 교포
(2) 중국교포
(3) 일본교포:
(4) 미국교포

(1) 독립국가연합 교포
2010년 1월 1일 현재 독립국가연합 내에는 145만명의 교포가 거주하고 있다. 멀리 벨라루시아나 우크라이나에도 교포가 있으나 보다 많은 인구는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그리고 러시아연방에 거주한다. 우즈베키스탄에는 22만336명, 카자흐스탄에 10만3525명, 그리고 러시아연방에 10만8325명이 거주하고 있다.
사할린에는 4만 여 명에 달하는 한인들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사할린 남부가 일본의 영토였던 일제강점기에 강제로 징용당한 사람들입니다.

(2) 중국교포
중국에는 2010년 현재275만명의한인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한인들의 분포는 동북 3성(요령성, 길림성, 흑룡강성)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고 연변조선족 자치주와  장백조선족 자치현이 있습니다.
한인들은 연해주에서와 같이 황무지를 개간하여 농토를 만들고 특히 중국인이나 만주족이 버린 늪지대를 개간하여 논을 만들고 벼농사를 시작했습니다. 중국인의 통념으로 벼농사는 양쯔강 이남에서나 가능하고 만주와 같은 북부에서는 밭농사만 가능한 것으로 생각하여 왔습니다. 이러한 곳에 논을 만들고 벼농사를 일구어 중국인은 한인을 ‘물오리’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예슈아 대학교 총장 현 베드로 박사의 부친이신 현규서 독립투사께서 장춘시 농안현 소 방신고우 강물을 끌어 올려 30명의 조선농사꾼과 함께 벼농사로 대농장을  성공적으로 키우신바 있습니다
한국에서 1919년 3•1운동이 발발하자 중국에도 확산되어 용정을 중심으로 크고작은 항일운동이 전개되었고 상해(上海)에 임시정부가 수립됩니다. 한편 한국에서 우국지사들이 만주로 대거 이주하여 무력 항일전쟁을 계속합니다. 유명한 봉오동전투나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전투가 전개되는 것도 1920년 만주의 북간도 영내입니다.
1932년 일본이 만주에 만주국을 건립하면서 항일 의병의 일부는 관내로 이동하고 만주에 남은 사람들은 지하로 들어가 중공군과 합작을 합니다.
1945년해방이되었으나 중국은 짱제스(蔣介石)의 국민당군과 마오쩌뚱(毛澤東)의 공산당군이  전쟁을 시작하였습니다. 이것을 ‘해방전쟁’이라 하는데 만주에서 중공군과 합작으로 동북연군을 편성한 한인들은 해방전쟁에 역시 큰 공헌을 합니다. 해방전쟁이 끝나자 바로 한반도에서 6•25전쟁이 일어났고 중국에서는 ‘항미원조(抗美援朝)’라 하여 북한을 도와줍니다.이에 중국 교포가 적극적으로 북한을 후원하고 북한을 위해 참전합니다. 항미원조가 끝날 무렵인 1952년, 중국은 연변에 조선족자치주를 허용하여 한인에 의한 자치주가 성립됩니다.자치주의 공용어는 한국어이며 외부의 간판도 한국말을 먼저 쓰고 한자를 씁니다.연길의 시장에는 북한사람들도 장사를 하는, 국제적인 시장이다. 한편 한국에서 백두산을 찾는 관광객이 많아지면서 연길은 소비도시로 발전하고 있다. 한국과의 왕래에서 가장 큰 소득은 한국과 미국의 교포들이 세운연변과학기술대학입니다.
장백조선족자치현은 압록강 상류에 위치하고 있는데 북한의 해산과는 100m도 안 되는 거리에 있어 서로 소리를 질러 대화가 가능할 정도입니다. 산악지대인 장백은 인삼의 재배로 유명합니다. 자치현이기 때문에 자치주와 같이 한글을 공용어로 사용하고 모든 영역을 교포들이 이끌고 있습니다.

요령성 심양에는 교포들의 집거지역인 서탑지구가 있습니다. 재중교포들은 중화인민공화국 건립에 지대한 공로를 세운 민족으로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중국교포는 한반도 외부에 자치주와 자치현을 갖고 있는 유일한 교포입니다
따라서 중국교포는 한인으로서의 자부심이 강하고 한국적 전통문화를 가장 잘 보존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중국 건설에 큰 공을 세워 중국 국민으로서의 자부심도 강합니다.(3)

일본교포:
2010년 현재 일본에는 95만명의 교포가 있으며 오사카에 24만9255명, 도교에 14만9001명, 고베에 8만3653명, 나고야에 7만7152명, 요고하마에 3만9550명, 후쿠오카에 3만4582명, 시모노세키에 3만3935명, 니가다에 1만2385명, 센다이에 1만954명 그리고 삿포로에 6,344명이 거주하고 있다. 이와 같이 거의 전국에 교포가 분산되어 있으면서 오사카 이꾸노구에 집거하고 있습니다. 해방후 귀국하지 못하고 일본에 잔류하게 된 사람은 60만 명이며 이들이 재일교포를 형성합니다. 해방 초기 모든 사람들이 귀국을 서둘렀고 지역마다 ‘조선인연맹’을 결성하여 귀국을 돕거나 일제강점기 억압되었던 한글과 한국사를 가르치는 사설학교들이 도처에 자생적으로 성립됩니다.

조선인연맹은 자발적인 집단이고 전국적인 조직을 가졌으나 좌경하여 일본공산당의 지시를 받고 있었습니다. 뒤늦게 이것을 안 반대파가 ‘거류민단’을 결성하였습니다. 말하자면 처음부터 재일교포는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어 대결과 투쟁을 일삼은 것입니다. 민단과 조총련은 사사건건 대립했지만 가장 심한 대립은 1960년의북송사건과1974년의문세광(文世光)사건때이다.북송사건이란 북한의 감언이설로 10만 명의 재일교포가 북한으로 간 사건을 말합니다

*문세광사건이란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행사에 참가한 대통령 영부인 육영수(陸英修)여사 를 문세광이 저격한 사건 입니다.
재일교포는 오늘날까지 일본인의 편견과 차별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고 일본인으로부터 게으른 민족이라는 누명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불리한 환경과 조건에서도 굴하지 않고 한인으로서의 긍지를 갖고 꿋꿋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중국이나 미국보다 불리한 조건에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이 훨씬 어렵겠지만 재일교포는 이것을 이겨내고 있습니다.

(4) 미국교포
2010년  현재 미국에는 300만명의 한인이 거주하고 있습니다.재미교포의 역사는 1903년 하와이 사탕수수밭의 노무자로부터 시작되었으나 일본의 방해로 1905년 한인의 이주가 중단되었다. 미국으로 본격적인 이민이 시작되는 것은 1965년 미국이 새이민법을 발표하고 한국인 2만 명의 이주를 허가한 이후부터이다.
1992년 5월  LA에서 있었던 한인촌 사건. 흑인청년이 고속도로에서 백인경찰에게 집단폭행 당한 사건이 발생하였고, 이들 가해자가 무죄로 판결되자 흥분한 흑인들이 시내에서 폭동을 일으켰다. 이때 흑인들은 한인촌을 습격하여 가게를 불지르고 기물을 부수거나 약탈해 갔다. 한인들은 이것을 보고도 방어할 도리가 없었다.

*1992년 5월  LA사건은
*1923년 일본의 관동 대지진,
*1937년 소련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의
강제이주와 더불어 해외교포의 3대비극으로 일컬어집니다.

***인류 역사의 마지막 교황 프란치스코 1세***

266대 교황 프란치스코]새 교황 배출한 예수회는 봉사 힘쓰는 수도회… 교육사업 역점
  
교황 프란치스코를 배출한 예수회는 1534년 에스파니아(현 스페인)의 수도사 이그나시오 데 로욜라와 훗날 일본에 그리스도교를 전파한 프란시스코 사비에르가 함께 결성한 가톨릭교회 내 남자 수도회다. 회원 각자의 인격 완성과 이웃에 대한 봉사 및 구원에 초점을 맞춰 설립됐다. 높은 도덕심과 인내, 소명을 강조한다. 1540년에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정식 수도회 조직으로 승인을 받았고 로욜라가 초대 총장을 지냈다.

예수회가 아시아에 진출한 것은 1542년. 사비에르가 포교활동을 위해 인도를 거쳐 일본으로 간 것이다. 1583년 중국으로 간 예수회 소속 마테오 리치가 중국인을 대상으로 쓴 ‘천주실의(天主實義)’는 조선에도 전해졌다. 예수회는 교육사업에도 역점을 두고 있다. 1547년 예수회 대학을 설립한 이후 세계 100여 개국에 진출해 226개의 단과대학과 종합대학을 설립했다. 예수회가 한국에 들어온 것은 1954년으로 서강대(1960년) 광주가톨릭대(1962년) 등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1282년 만에 비(非)유럽권에서 선출된 266대 교황 프란치스코의 앞길은 가시밭길이다
가난한 자들의 아버지.’ ‘겸손과 청빈의 대명사.’

기도와 고행을 통한 삶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온 교황 프란치스코는 이렇게 불린다. 가난한 보통 사람들과 어울려 살면서 몸으로 직접 복음을 실천해 온 성직자라는 평을 듣는다.

[266代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名 '프란치스코'는… 13세기 淸貧 실천했던 聖人 이름

•교황명 프란치스코는 중세 이탈리아 아시시의 성인(聖人) 프란치스코(1181~1226)를 딴 것이다.
프란치스코는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20대 초반까지 방탕한 생활을 했다. 이후 전쟁 포로와 투병 생활을 계기로 가난한 사람들과 소외된 이웃을 위해 살며 청빈(淸貧)을 실천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생긴 상처인 '성흔(聖痕)'이 만년의 프란치스코 몸에 나타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평화의 기도'는 비(非)가톨릭 신자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로 시작하는 기도다.

교황명은 교황이 선출된 후 행하는 첫 결정이다. 전 세계 12억 가톨릭 신도에게 교황의 교도(敎導) 지침을 선언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세실 로베크 풀러신학교 교수는 "교황은 프란치스코 성인의 소박하고 겸허한 삶을 따라 가난한 사람들의 친구가 되겠다는 메시지를 전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해석도 있다. 예수회 출신 첫 교황으로서 예수회를 창립한 프란치스코 사비에르(1506~1552)를 따랐다는 것이다. 교황명으로 '프란치스코'는 이번에 처음 쓰였다. 교황은 구체적인 선택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예수회는 16세기 로욜라가 창립한 카톨릭 내의 결사 단체로 각 국에서 몰락해가는 로마 카톨릭의 권위를
다시 세우고, 카톨릭 내에서 교황청의 권력을 옹호하며, 기독교를 핍박•견제하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예수회는 각 국에서 로마 교황청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정치, 사회, 종교, 사회조직 등에 침투하였고,
목적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음모, 암살 등을 자행해 왔기 때문에 여러 나라에서 추방된
경험이 있습니다.

*예수회는 종교개혁 이 후 종교재판을 주도하며 수 많은 기독교인을 학살하였고, 많은 나라에서 카톨릭을
유지시키기 위해 정부와 협력해 기독교인이나 그리스 정교인을 고문하거나 강제 개종시켰습니다.

*예수회는 파시스트와 나치당을 지원하여 2차 대전을 일으켰는데, 2차 세계대전은 카톨릭 신자인 히틀러와
교황청이 협력하여 세계를 정복하려고 했던 전쟁입니다.
이 과정 중에 교황청은 히틀러의 대량 학살을 교사(敎唆) 내지는 방조하였고, 한 번도 비난한 적이 없으며,
물심양면으로 나치를 지원하였습니다.

*예수회와 교황청 사이에도 권력 타툼이 있었고, 교황청의 권력을 장악한 예수회를 축출하기 위한 시도는
교황의 암살 등으로 좌절 되었습니다.
*예수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프리메이슨의 사상과 조직을 흡수하여 창립되었고, 프리메이슨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가지고 있고, 많은 예수회 사제가 프리메이슨이라는 점입니다.

유대인 일루미나티는 시온 의정서에서 일반 민중과 정치인은 머리 나쁜 소 같은 사람들이라며 경멸하지만,
엘리트 결사 조직인 예수회는 존중하며 경쟁자로 여기고 있습니다.
예수회와 프리메이슨은 공동의 이익을 위해서 때로는 협력하지만 서로 다른 사상과 기반을 가진 권력집단이며,
언젠가는 제거해야할 적으로 교황청은 말세 때 프리메이슨에 의해 파멸될 것입니다.(계시록 17/16

계13장: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적그리스도

*땅에서 올라오는 짐승;거짓 선지자 :
두뿔을 가진 양===*양의탈을 쓴양 !!!

"네가 본바 계:13장 이 열 뿔과 짐승 적 그리스도가 음녀 거짓선지자를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그 살을 먹고 불로 아주 사르리라"


1542년 프란치스코 사비에르가 포교활동을 위해 인도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오면서 아시아에 전파됐다. 일본 선교와 함께 서양문물 전파, 개화에 앞서온 예수회는 임진왜란 당시 왜군과 함께 조선에 진주하며 우리와 첫 인연을 맺었다.

특히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선봉장이던
고니시 유키나가는 신실한 가톨릭신자로 예수회 신부들을 대동하고 전투에 임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도라 할 성녀 줄리아도 당시 고니시의 양녀로 입양된 조선땅 소녀였다.

현대에 접어들면서 예수회는 활동의 초점을 사회 정의 실현과 교육의 확대에 두고 전 세계에 대학 등을 설립했다.
예수회가 세운 대학으로는 로욜라 계열, 조지타운 대학, 보스턴 칼리지, 포드햄 칼리지 등 미국에만 28개가 있는 등 전 세계 100여 개 국가에 모두 226개의 대학이 있는 것으로 집계된다.
이중 우리나라에는 1954년 박근혜 대통령의 모교인 서강대학교 설립을 시작으로
광주가톨릭대학교, 수원 '말씀의 집' 등을 운영하고 있다.

신임 교황 프란치스코는 엄격한 규율과 청빈한 삶을 강조하는 예수회 출신답게 평생 소박한 삶과 빈자를 위한 삶을 살아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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